정이수 변호사

의정부 – 정이수 법률사무소

상담 후기
– 정이수 변호사

매달 넷째 주 화요일 아침마다 내 사무실이 아닌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구리남양주 지부로 출근한지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이곳에서 만났던 분들은 주로 가정폭력을 당하신 분, 배우자와 갈등을 겪는 분, 이혼한 배우자와 법률적인 분쟁이 있는 분, 임대차계약관계나 근로관계에서 불이익을 받은 임차인이나 근로자 등 가정문제로 고민중이거나 법률적인 대응에 취약한 분들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분들은 흔히 무력하고 의존적일 거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로 상담소를 찾아오신 분들은 대부분 지혜롭고 용기 있는 분들이었다.

한 여성은 결혼한지 30년이 되었는데 평생 남편에게 맞고 살았고, 자녀들도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였다고 하였다. 이런 유형은 상담소에서 상담을 하다보면 안타깝게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이분을 남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이분의 빛나는 눈동자 때문이다. “저는요, 한 번도 제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어요. 늘 끌려만 다녔어요. 그런데 더 이상은 이렇게 살지 않고 제 인생을 찾을 겁니다. 변호사님 도와주세요.” 주먹을 불끈 쥐면서 눈물을 훔치시는데, 그 눈물이 씻겨나가고 드러난 눈동자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30년간 억눌려서 발휘되지 못한 힘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듯 했다. 나는 이분의 용기에 박수를 치고 싶었다. 이분은 소송구조로 이어져서 결국 재판상 이혼이 되었고, 폭력 남편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셨다.

한 분은 매우 특이한 경우였는데, 평생을 공부상 신분을 갖지 못한 채 살아오신 할머니셨다. 이분은 자신의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를 알지 못하셨고, 이름과 형제의 이름 외에는 기억하시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학교를 1~2년 다니다가 계모의 구박을 받아 집을 나온 이후 떠돌이 생활을 해오셨다. 사실 이분이 출생신고가 되었는데 주민번호를 몰라서 가족관계등록부를 못 찾는 것인지,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상담소에서는 이분의 소송구조를 결정하였다. 나는 일단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을 위한 성과 본 창설허가신청을 하여 허가를 받았다. 그 후 가족관계등록부 부존재 사실에 관한 증명이 필요했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였다. 시청에서는 무심하게 법원에 문의해서 발급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법원이 발급할 문서가 아닌 것을 알았지만 법원에 형식상 문의를 한 후 다시 시청에 요청하였다. 그러나 해당 시청에서는 경험이 없어서였는지 소관이 아니라는 답변만 왔다. 나는 전국의 경력이 오래된 가족관계등록과 공무원을 검색해서 위 서류의 발급 방법에 대해 문의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가족관계등록에 관한 업무경험이 많을 것 같은 구청 몇 군데를 나름 꼽아서, 그중 서울중앙지방법원과 가까운 서울 서초구청, 오래된 도심인 서울 중구청에 문의를 하였다. 서울 중구청의 가족관계등록과 담당 공무원은 이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정에 대해 해결 의지를 보이면서 관할 사건이 아닌데도 끝까지 알아봐서 나에게 다시 전화로 알려주었다. 만 이틀을 전화기를 붙잡고서 해당 시청, 법원, 여러 구청에 묻고 답변을 기다린 결과였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서류발급이 되었고 가족관계등록부창설허가를 신청하였다. 이 할머니의 이름에 쓰일 한자를 정하면서, 성명학도 잠깐 보았다. ‘변호사로서 이런 일도 해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정부지방법원은 이 할머니에 대해 여러 조사를 한 뒤 가족관계등록창설을 허가하였다. 가정법률상담소에서는 할머니께서 마지막으로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는 일까지 도와주셨다. 드디어 이 할머니는 당당한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찾고 누릴 수 있게 되신 것이다.

법률상담은 문턱이 그리 낮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나 발걸음이 더 어려운 분들을 위해 열려있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있고, 상담소를 통해서 크고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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